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불교가 무력해지자 소는 관대해져서 신분에 관계없이 육식과 육식을 했다는 기록이 많았는데, 정약용은 부친이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개고기 조리법에 대해 썼다. 그는 훌륭한 학자였습니다. 물론 고기를 못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국의 주요 요리는 대부분 육수, 파, 마늘이었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따로 발달하였다. 한국은 1,500년 이상 동안 승려였다. 따라서 '문명화된 음식'은 그야말로 한국 채식문화의 정수다.
채식주의를 겨냥한 온라인 모임은 1998년 11월 하이텔 정신의학회에서 시작됐다. 1999년 이광조, 김승권, 배복기, 정인봉 등의 주도로 하이텔 채식주의 클럽으로 성장하였으며, 같은 해 5월에는 종로1가에 처음으로 채식주의 캠프가 생겼다. 이때 채식주의 책자, '자유를 위한 베넷', 팸플릿이 무료로 배포되었다가 나중에 마로니에 공원에는 채식주의 캠프가 있었다. 2000년 인터넷에서는 처음으로 각 지역 대표들의 협의체 형태인 청록색 민족 채식연합이 설립됐다. 그리고 삼 묵대 학교에서 송숙자 박사와 협력하여 채식 강좌와 채식 만찬회가 열렸으며, 10월 1일에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채식주의자의 날 캠페인이 열렸다. 당시 캠페인 및 채식 시식행사는 재림 대교, 명상단체, 동물보호단체, 채식단체 등과 협력하여 진행되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채식주의 음식과 관련된 야외무대에서 채식주의 요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명동성당까지 채식주의 음식의 장점을 홍보하는 가두행진이 있었다. 끈질긴 채식운동과 함께 신문, 방송, 월간, 주간지 등 미디어에 채식주의 클럽의 소개로 채식주의 식단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했다. 2002년 인사동에서는 48쪽 분량의 컬러 채소 지침서 1만 부를 무료로 제작해 배포했으며, 100분 토론의 102편이 '채식 또는 육식'을 방영했다. 육류 쪽 패널 중에는 김숙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창기 박사 등이 있었고 채식 쪽에는 이광조, 000 등이 있었다. 초창기 청록색 전국 채식주의자 연합 회원들은 초창기에 성장하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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